[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10] 자녀 초청 이민 통한노부모들의 호주 정착에 대해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10] 자녀 초청 이민 통한노부모들의 호주 정착에 대해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10]
자녀 초청 이민 통한 노부모들의 호주 정착에 대해
오늘은 호주로 이주해서 정착한 젊은 부부가 부모초청 비자신청을 통해 부모와 함께 살기로 결정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몇가지 문제점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성인 자녀와 함께 살기 위해 호주에 온 많은 노부모들은 그들이 기대했던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 언어 문제와 생활 환경의 변화 등으로 고립감과 무력감 속에서 힘든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호주에 먼저 정착한 자녀들이 연로한 부모를 호주에 모셔오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맞벌이 부부의 경우 어린 자녀를 돌보는 사람이 필요해서, 또는 늙어가는 부모를 자식없이 고국에 남겨두는 것을 원치 않아서 등이 주된 이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가족 간 합류가 서로가 결코 원하지 않는 상황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자녀들의 부모 초청 비자로 호주에 이민 온 연로한 부모들과 상담해 온 카스 정착 서비스 직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연로한 부모들이 호주에서 자식들과 함께 살기로 결정할 경우, 앞으로 닥칠 어려운 문제나 그 것이 초래할 결과는 고려하지 않고, 좋은 면만 상상하고 이주를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

더구나 호주로 이주를 결정한 부모들은 본국에서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 등을 정리하고 이 자금을 삼 대가 함께 사는 주택 구입에 투입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부모와 자식간에 재정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는 심한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고국에서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온 부모는 이국 땅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안타까운 처지로 전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이나 중국 등 많은 아시아 문화권에서 삼 대가 함께 사는 것을 매우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호주에서 자라 서구식 사고와 생활 방식을 가진 손주 손녀들과 한 공간 살게 될 경우 생각지 못한 갈등이 초래되기도 한다. 더우기 어린 손주들이 자라면서 공간이 좁아지고 심한 경우 손주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독립 공간이 필요할 때 조부모는 거실에서 생활하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집을 나가는 결정을 하게 된다. 그 때 생활비나 렌트 등의 재정적인 문제로 갈등이 시작될 수 있다.

물론 대안으로 정부 주택을 신청할 수는 있기는 하지만 신청 이후 대기 시간만 해도 3 년, 5 년 또는 심지어 10 년이 걸리는데 언어 장벽 등 여러 문제까지 겹치다 보면 급기야 자식, 부모간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이다.

​정착 서비스 직원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은 어르신들이 우리 정착 서비스를 찾아온다. 복지 혜택이나 정부 주택 신청을 위해 오는 경우가 많지만 단순히 자신들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 위해서도 우리를 찾아 오신다. 젊은 부부들은 그들의 부모가 아직 건강해 자신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경우는 가족이 함께 살아야 한다며 가족 사랑을 강조하지만, 자신의 자녀가 성장해서 부모 도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부모가 병이 들거나 더 연로해지면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때 부모는 갑자기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라면서 안타까워했다.

호주인들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호주인들의 경우 일찍 은퇴 계획을 준비하는 듯하다. 주택 융자금을 모두 갚은 후에는 의료 및 장례 보험을 미리 준비하며 평생동안 일한 자신들을 위해 여행을 하면서 노후를 즐긴다. 건강이 악화되면 집을 팔고 노인 케어 시설로 입주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정부 주택을 신청하고 퇴직 후 정부 연금으로 생활한다.

연로한 부모가 호주로 이민 온 가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 카스 정착 서비스 직원들은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자녀들이 부모를 호주로 초청할 때 모국에서의 연금으로 호주에서 생활할 수 있는지, 또 필요한 경우 따로 살 곳을 마련하는 등 재정적으로 부모를 부양할 수 있는지 장기적인 안목으로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 부모가 영어라는 언어 장벽과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등도 세심하게 숙고해 보아야 한다. 가족 구성원 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온 가족이 함께 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카스 (CASS) 사회복지 칼럼 9] 카스와의 만남, 내 인생의 새로운 원동력

[카스 (CASS) 사회복지 칼럼 9] 카스와의 만남, 내 인생의 새로운 원동력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9] 카스와의 만남, 내 인생의 새로운 원동력

내가 가진 능력이 크건 작건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그 것이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이는 매우 보람된 일이다.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고 이웃을 향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으로 하는 자원 봉사는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호주는 특히 자원 봉사를 격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데 자원 봉사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이 사회를 연결해주는 매우 소중한 사람들이다.

​나는 자녀들의 초청으로 인생의 후반부를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 2년 전 호주로 이민 왔다.

내가 처음 카스를 만나게 된 것은 아이들의 부모 초청 비자로 온 지 일년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아는 사람도 없는 가운데 시간을 좀 더 생산적으로 보낼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던 중 SBS 라디오에서 ‘멘토와의 만남(Meet a Mentor)’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유익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은 들었어도 내 나이 60대 후반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그냥 잊기로 했다. 그런데 인터넷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계속 ‘멘토와의 만남’ 홍보를 접하면서 사회적 경험을 갖춘 멘토와의 강의를 통해 호주에 관한 정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마음을 바꾸고 신청했다. 그렇게 해서 카스와 인연을 맺었고 카스를 통해 자원 봉사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즈음 카스 페이스북을 통해 스트라스필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가정방문 커뮤니티 연계 프로젝트(Door to Door Community Engagement Project)’에 함께 할 한국인 자원 봉사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인생을 오래 살다 보면 베짱이 생기는 것일까? 무슨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모르면서도 “모르면 물어가면서 하리라” 마음먹고 신청했더니 흔쾌히 좋다는 연락이 왔다.​

세상의 모든 일은 목적에 신뢰가 생기고 선한 일을 하겠다고 하면 용기도 생기고 잘 해야 되겠다는 목표도 생기는 법이다. 그 단체에 계신 분들의 따뜻한 환영과 내가 맡은 일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난 뒤 우리는 여러 가정을 함께 가가호호 방문하게 되었다.

​코비드-19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 주위에는 언어 장벽과 경제적, 정신적인 어려움을 혼자서 고민하며 어느 곳에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는 이웃들이 많이 있다. 이번 연계 프로젝트를 통해 힘든 상황에 처한 이웃에게 도움 받을 수 있는 단체를 알려주고, 또 그들의 고민을 설문조사를 통해 통계로 자료로 만들어내는 등 유익한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비록 두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고 지역이 한정되어 많은 가정을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프로그램에 작은 부분이나마 참여할 수 있게 되었음에 보람을 느꼈다. 이런 기회를 준 카스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한국에서 멀고 먼 호주에 아이들을 따라와서 살게 될 줄은 정말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애들 셋 모두 이제 언어의 장벽과 문화 차이를 극복하고 잘 정착해서 성실히 살고 있음이 부모에게는 대단한 자부심이요, 자랑거리다. 자녀들이 이렇게 훌륭히 자라기까지 부모의 헌신은 당연한 것이고 선생님, 친구들과 사회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그렇다면 부모로서의 나는 건강하고 아직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기에 그 고마움을 커뮤니티에 동참하는 일을 통해 사회에 되돌리는 일은 마지막 길을 가기 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서슴지 않고 도전하고 싶다. 내가 가진 능력이 크고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힘써 일하리라. 이것이 내가 부모에게서, 선생님에게서, 사회에게서 받은 빚을 갚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카스라는 단체를 알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요, 그 단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 또한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사람의 운명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가족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영감과 열정을 공유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람과 단체는 선택할 수가 있다. 선택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한다면 그 선택은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없다.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8] 60년만의 이산 가족 상봉 ‘미국 입양 간 여동생 찾아 낸 혈육의 정’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8] 60년만의 이산 가족 상봉 ‘미국 입양 간 여동생 찾아 낸 혈육의 정’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8] 60년만의 이산 가족 상봉
-미국 입양 간 여동생 찾아 낸 혈육의 정-

팻 렁 (Fat Leong) 타이치 강사의 가족은 헤어진 지 60년만에 상봉했다.

​2010년 80세가 된 팻 렁 강사는 카스 후아 안 그룹(CASS Hua An Activity Group) 모임에서 들뜬 목소리로 한 여성을 소개했다. 그가 "이 사람은 60 년 넘게 연락이 끊겨 못 만났던 제 둘째 여동생입니다" 라고 말했을 때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놀라움과 함께 이 가족의 재회에 큰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렁 강사가 소개한 가족 이야기는 마치 영화나 소설 같다. 그 날 함께 한 이들에게 렁 강사는 그들 가족에 드리운 가슴 아픈 우여곡절의 삶을 들려주었다.
1941년 팻 렁 씨는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홍콩에서 공부하기 위해 솔로몬 제도(Solomon Islands)에 살던 가족을 떠났다. 솔로몬 제도에는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여동생 두 명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렁 씨가 홍콩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 이런 혼란 가운데 솔로몬 제도에 있던 가족들에게는 충격적인 일들이 닥치고 있었다.

1942년 일본군은 솔로몬 제도를 점령했고, 렁 씨의 부친은 체포되어 일본 군함에서 강제노역을 하게 되었다. 불행은 한꺼번에 닥치는 것인가. 아버지가 일하시던 배가 공격을 당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사망하게 되었고 어머니와 큰 누나마저 살해 당하는 참극이 연이어 일어났다. 당시 세 살이었던 렁 씨의 둘째 여동생은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지만 그나마 천만 다행으로 프랑스 선교사 병원으로 이송된 후 미국인 가톨릭 신부에 의해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이후 미국으로 간 둘째 여동생은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아직 아기였던 막내 여동생만이 친척들의 보살핌으로 전쟁의 격변을 겨우 피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홍콩 광둥성 친척 집에 숨어 있던 렁 씨는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지역 경찰대의 간부가 되었고 1950년 상황이 안정되었을 때, 아내와 함께 솔로몬 제도로 돌아갔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부모님과 큰 누나, 둘째 여동생은 없고 이제 남겨진 유일한 그의 가족은 막내 여동생 뿐이었다.

​이후 그는 솔로몬 제도에서 사업을 일구었고, 지역 중국인 기업 협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커뮤니티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또 1974년 은퇴 후에는 호주로 이주했다.

​성공적인 사업가로서 또 커뮤니티를 위해 헌신하면서 성공적으로 살아왔지만 렁 씨의 마음 속에는 늘 사랑하는 둘째 여동생의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평생의 한이 되었다. 미국인 신부가 남긴 주소를 유일한 단서로 네 차례나 미국을 방문했지만 그 때마다 동생을 찾는데 실패했고, 점점 세월이 흐르면서 여동생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 2008년의 어느 날, 렁 강사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미국행을 결심했다. 결국 그의 끈질긴 집념이 하늘을 감동시킨 것일까. 드디어 둘째 여동생을 찾게 되었다.

​그 해에 둘쨰 여동생은 오빠와 막내를 만나기 위해 호주를 방문했고 마침내 60년만에 세 남매 가족 상봉이 이뤄질 수 있었다. 렁 강사와 막내 여동생에게, 남은 혈육인 둘째 여동생과의 만남이 갖는 의미와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이었다.

렁 강사는 호주로 이주한 이후에도 커뮤니티 봉사자로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해 왔다. 1987년부터 그는 맑은 날씨나 궃은 날씨 속에서도 허스트빌 공원에서 타이 치(Tai Chi)를 무료로 가르쳤다. 1996년부터는 카스의 초대로 허스트빌에 있는 ‘후아 캉(Hua Kang) 그룹’ 멤버들에게 태극권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이 모임은 이후 캠시의 ‘후아 안(Hua An) 활동 그룹’으로 확대되었다.

그의 적극적인 자원봉사는 정부의 기관들에서 인정받아 여러차례 상을 받았다. 또 2009년에는 카스 준 이사 중 한 명이 되었고, 후에 원로 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7] 남희 씨가 전하는 ‘나의 어머니 이야기’ - 부모의 헌신, 다음 세대에게도 기억되기를 바라며…-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7] 남희 씨가 전하는 ‘나의 어머니 이야기’ - 부모의 헌신, 다음 세대에게도 기억되기를 바라며…-

남희 씨가 전하는 ‘나의 어머니 이야기' 부모의 헌신, 다음 세대에게도 기억되기를 바라며…

​암을 비롯한 갖가지 질병이나 여러 사고 등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놓는다. 이민자들의 경우, 호주의 복지시스템에 익숙지 않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 언어문제까지 겹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카스 (CASS)가 격주로 제공하는 본 칼럼은 뜻하지 않게 만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문복지기관의 도움으로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과 사랑으로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호주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호주사회로의 융합을 위한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되고자 마련됐다. (편집자 주)

격주로 소개되는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을 한호일보, 코리아 타운, 코리안 뉴스를 통해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카스에서 잔잔한 음악과 함께 칼럼을 전해 드립니다.

자녀의 입장에서는 특히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어머니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쇠약해지는 가운데 기억력이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안타깝다. 그 기억 속에는 슬픔과 절망도 있지만 한 사람의 소망, 기쁨, 꿈, 사랑 등 살아오면서 겪은 그 모든 것이 농축되어 있다. 가족을 돌보는 어머니의 역할이란 그 어디에서나 비슷하면서도 이민자 가족을 위한 어머니의 헌신에는 외로움 가운데 버텨야 하는 그 어떤 다른 색깔의 희생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부모의 헌신을 기억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한국인들의 아름다운 정신이 이국땅에서도 여전히 다음 세대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희 씨가 전해 준 그녀의 어머니, 이 혜숙(Lisa Ku) 여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혜숙 여사는 40대 초반이던 1976년 8월 가족과 함께 호주에 이민 왔다. 카스 홈 에이징 서비스의 오랜 고객으로 최근 89번째 생일을 맞이한 그녀는 네 명의 자녀와 현재는 손주 8명, 증손주 4명을 슬하에 두고 있다.

​남희 씨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군인이셨다. 어린 시절, 근무지의 변동이 자주 이뤄지는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그녀 가족은 정든 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늘 이사를 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이 혜숙 어르신은 이삿짐을 꾸리는 일에는 거의 전문가가 되었다.

​전형적인 가정주부로서 평생 자녀들을 교육하고 돌보는 일을 천직으로 여겼던 이 혜숙 어르신은 남편과 정반대 성격으로 내성적이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교회에 친한 친구가 몇 명 있었지만, 그나마도 나이가 들면서 점차 서로 방문하는 것이 뜸해지더니 전화로 연락하는 것도 잊어버리신 것 같다.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친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친구들과 전화 통화한 지 일년도 더 넘은 것 같아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남희 씨의 마음은 너무나 안타깝다.

“조금 전 말씀하셨던 것을 잊어버리면서도 어떤 때는 사십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실 때도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어머니가 지나간 시간 속에서 주로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을 기억하신다는 것이다.”

​남희 씨는 한때 어머니가 육체적으로 점점 쇠약해지는 것이 걱정되어 어머니를 돌봐드리는 일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여생을 양로원에서 보낸다는 것은 어머니도 원하지 않을 것이고 자식 된 입장에서도 내키지 않았다. 고민하던 중 한인 직원들이 집으로 직접 찾아와 어르신들을 돌보는 카스의 홈 에이징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바로 카스에 연락했고 지금까지 카스 서비스를 받고 있다. 언어와 문화 배경이 같은 한인 직원들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혜택이다. 어머니가 오래 살던 집에서 그대로 지내면서 도움을 받으며 편안하게 지낼 수 있으니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른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외출이 힘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카스를 포함, 다른 단체에서 주관하는 시니어 그룹 모임에 다니셨다. 거기서 또래 어르신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노래, 게임 등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룹에 참여하는 것을 늘 기대하셨다. 또 주일이면 예배 후 함께 점심도 먹고 쇼핑을 했다. 요즘 들어 어머니는 당신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주 잊어버린다. 쇼핑할 때는 매번 같은 품목만 여러 번 사기 때문에 내가 따로 어머니가 필요한 것을 구매해야 한다. 하루빨리 록다운이 끝나 어머니가 교회 예배에 다시 가고 일요일 오후마다 가졌던 모녀만의 행복한 시간을 갖고 싶다”.

몇 년 전 남희 씨는 점점 노쇠해가는 어머니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80세 생일 기념으로 함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한국에 사는 동생들과 친지, 친구들을 만나니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 특히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초 열린 진해 벚꽃 축제에 가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KTX를 타고 해군기지까지 들어가 축제에 참석하고 많은 추억을 쌓으며 2주를 보냈다. 슬프게도 어머니와 함께 한 마지막 해외여행일 수 있고 지금은 전혀 기억 못하지만 어머니는 한국에서의 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실 것이다. 또 이제 연로하셔서 해외여행은 쉽지않을 것 같아 앞으로 인근 멋진 곳으로 함께 여행을 다닐 생각이다. 자주 잊어버리고 말씀하시는 거나 행동이 전혀 일치되지 않는 때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함께 하는 시간이 당신만의 세계에서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의 바람은 어머니가 오래도록 안전하고 편안하게 가족들 곁에 머무는 것이다.”

“어머니가 하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지금까지 살아오신 것처럼 기품있게 그렇게 사실 것이라 믿는다.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을 통해 나는 우리 삶에 돈이나 성공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삶과 주어진 모든 것에 만족하며 가족을 위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향한 축복이 항상 함께하길 기도하며 어머니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배려 가운데 따뜻하고 다양한 케어를 제공하는 한인 카스 서비스 팀에 감사드린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잘 보살펴 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우리는 어르신들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나누고, 또 그들의 건강과 행복한 노후를 위해 정기적으로 체크하고 보살펴주는 전문기관의  도움도 구해야 할 것이다.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6] 이민자 위한 다양한 사회복지(정착) 서비스 제공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6] 이민자 위한 다양한 사회복지(정착) 서비스 제공

이민자 위한 다양한 사회복지(정착) 서비스 제공 '센터링크 •영문 신청서 작성• 줌 세션 등 지원'​

암을 비롯한 갖가지 질병이나 여러 사고 등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놓는다. 이민자들의 경우, 호주의 복지시스템에 익숙지 않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 언어문제까지 겹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카스 (CASS)가 격주로 제공하는 본 칼럼은 뜻하지 않게 만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문복지기관의 도움으로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과 사랑으로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호주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호주사회로의 융합을 위한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되고자 마련됐다. (편집자 주)

격주로 소개되는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을 한호일보, 코리아 타운, 코리안 뉴스를 통해서 만나보세요

커뮤니티 사회복지(정착) 서비스라고 하면 다루는 분야가 매우 광범위하다. 호주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착 지원 서비스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국 땅에서 정착에 필요한 다양한 일들을 도와 호주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이민자로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카스에서는 2020년 2월부터 한인 대상 정착 지원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최근 들어서는 이용자 수가 갈수록 증가하여 웨스트 라이드와 로즈(목) 두 곳으로 확대, 호주의 복지제도 안내를 포함한 매우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한인 대상 정착 서비스는 호주의 복지 시스템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관련 정보 세미나를 개최하고, 또 개별적으로는 센터링크, 정부주택 등을 포함한 복지 혜택 케이스 상담을 제공한다. 특히 영어로 인한 불편함을 겪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 정부 관련 서류 작성도 무료로 도와주고 있다. 

상담분야 중 정부 주택 관련 문의가 비교적 많다. 정부 주택 신청 관련 상담을 할 때는 정부 주택을 신청할 수 밖에 없는 상담자의 어려운 상황을 신청서에 잘 나타나게 하려고 노력한다. 정부 주택은 신청 후 기본적으로 몇 년은 기다려야 하는데 그런 사실은 나로 하여금 조금은 막연함을 느끼게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신청서를 제출한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정부 주택을 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듣기도 한다. 이런 때는 도와준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큰 보람을 느낀다.

한인 어르신들 중에는 영어로 인해 불편함을 겪고 계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 벌써 우리 한인 대상 정착 지원 서비스가 입소문이 나서 갈수록 많은 어르신들이 영어 편지나, 여러 복지 서비스 신청서 혹은 도움이 필요한 일들을 들고 우리 카스를 찾아오고 계신다. 

얼마 전에는 주차 관련 티켓을 차에 조금 잘못 놓아두는 작은 실수로 큰 벌금을 추징 받는 경우가 생겼다. 어르신 혼자서는 이미 부과된 과징금 재심을 신청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므로 우리가 이를 도왔고, 결국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는 좋은 결과를 전해 들었다. 이 같은 도움을 받은 분들은 전화나 카톡 등을 통해 감사 표현을 전달해 오기도 한다. 

어느 고객은 지금까지 호주에서 이민자로 살아오면서 이렇게 감사함을 느낀 것은 처음이라는 피드백도 주셨다. 

때로는 과분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감사 표현을 받으면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착 지원 서비스에 있어서 좋은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한 고객들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여 듣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마음가짐도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회복지(정착) 지원 서비스팀에서는 또 한인 대상 자원봉사자 지원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한인 이민자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호주 사회 활동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 사회에 융합될 수 있도록 자원봉사자를 트레이닝하고 또 원하는 업무와 기관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카스가 한인 커뮤니티에 이미 잘 알려진 기관이고 또 커뮤니티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서인지 카스 자원봉사팀에 대한 관심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카스와 인연을 맺은 자원봉사자들은 사무보조, 그룹 리더, 강사, 시니어 그룹 지원 등 다양한 일을 통해 커뮤니티에 봉사하고 있고, 또 이러한 봉사 경력을 바탕으로 실제로 취업에 성공한 분들도 많이 있다. 

카스 정착 서비스팀은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우리 한인 커뮤니티에 복지 관련 유용한 서비스를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5] 우수 자원봉사자은정 씨 이야기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5] 우수 자원봉사자은정 씨 이야기

우수 자원봉사자은정 씨 이야기

'언제나 맛있는 식사로 어르신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암을 비롯한 갖가지 질병이나 여러 사고 등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놓는다. 이민자들의 경우, 호주의 복지시스템에 익숙지 않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 언어문제까지 겹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카스 (CASS)가 격주로 제공하는 본 칼럼은 뜻하지 않게 만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문복지기관의 도움으로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과 사랑으로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호주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호주사회로의 융합을 위한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되고자 마련됐다. (편집자 주)

​호주 내 한인커뮤니티는 최근 몇 년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에 따라 커뮤니티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면서 한인들의 커뮤니티 서비스 관련 봉사활동 참여도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카스는 다문화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한인 커뮤니티 대상 서비스는 크게 성장하고 있다. 카스에는 이미 150명이 넘는 한국인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 한국 팀은 카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카스의 한 직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자원봉사자 은정 씨의 감 동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카스 로즈 (Rhodes) 시니어그룹이 매주 금요일 에 진행돼왔다. 그룹모임이 열리는 홀에 들어설 때면 입안 가득 군침이 돌게 하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먼저 우리를 맞았다.​

​로즈그룹 어르신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자원봉사자 은 정 씨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요리하는 그녀의 모습과 화려한 음식냄새는 참가자들로 하 여금 프로그램이 시작하기도 전에 그날 하루를 함께 할 시 간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느끼게 했다.

은정 씨는 6년 전 자원봉사자로 카스에 처음 합류한 이후 로즈그룹을 위한 음식 준비의 책임을 도맡아왔다. 은정 씨 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어르신들에게 새롭고 맛있는 건강식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늘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어떤 때 는 개인비용으로 기꺼이 재료를 구입하기도 했다.

연로하신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야 할 때면 은정 씨는 자신이 시드니에 없는 동안 필요한 식재 료 준비나 요리를 담당해야 할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맡을 업무분담 등 음식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했다.​

로즈 시니어그룹 모임이 열리는 어느 금요일 아침, 한국에서 시 드니로 돌아오던 은정 씨는 공항에서 로즈그룹으로 곧 바로 와서 한국에서 가져온 여러 가지 한국 전통양념들로 음식을 준비해 모 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룹 전체가 야외로 소풍을 갈 때면 은 정 씨의 불고기 요리는 특히 큰 인기를 얻었다. 음식을 맛있게 드 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감출 수 없는 기쁜 미소가 은정 씨 얼굴에 서 떠나지 않는 것을 우리 모두 볼 수 있었다.

은정 씨는 언제나 어르신들을 가족처럼 대했고, 시니어그룹이 즐 길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그룹의 중견멤 버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지난 6년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은정 씨의 손을 통해 만들어진 식 사는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큰 즐거움이 되었다. 사람들이 은정 씨에게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헌신할 수 있냐 고 물어볼 때면, 그녀는 “우리가 준비한 식사를 즐기는 어르신 들의 모습을 보면 봉사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런 모습을 통 해 오히려 내가 치유와 기쁨을 얻는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 러한 사랑과 헌신을 인정받아 은정 씨는 ‘2019 NSW 자원봉 사자 상’을 수상했다

​은정 씨는 현재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로 즈그룹을 위해 직접 요리할 수는 없어도 여전히 카톡이나 전화 로 메뉴를 제안하고 새로운 음식 레시피를 보내면서 그룹에 지 속적인 관심을 보인다. 은정 씨의 이러한 열정과 태도는 로즈그 룹 멤버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봉사자들에게도 시 니어 그룹, 나아가서는 커뮤니티를 지속적으로 돕도록 하는 동 기부여가 되고 있다.

옛말에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항상 그를 사랑한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모두 은정 씨가 하루 빨리 호주로 돌아와 맛있 는 음식과 더불어 멋진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