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4] 절망의 시간에 찾아온한줄기 희망의 빛 – 호주국가장애보험제도 NDIS 수혜자 이야기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4] 절망의 시간에 찾아온한줄기 희망의 빛 – 호주국가장애보험제도 NDIS 수혜자 이야기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4]

절망의 시간에 찾아온한줄기 희망의 빛 

호주국가장애보험제도 NDIS 수혜자 이야기

암을 비롯한 갖가지 질병이나 여러 사고 등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놓는다. 이민자들의 경우, 호주의 복지시스템에 익숙지 않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 언어문제까지 겹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카스 (CASS)가 격주로 제공하는 본 칼럼은 뜻하지 않게 만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문복지기관의 도움으로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과 사랑으로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호주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호주사회로의 융합을 위한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되고자 마련됐다. (편집자 주)


파킨슨 병은 우리 몸의 신경계통에 이상이 생겨 신체의 운동능 력이 둔화되거나 상실하면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눈에 띄는 초 기증상으로는 손과 발의 떨림이나 경직, 움직임의 둔화,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상 등이 있다. 파킨슨 병에는 현재 획기적인 치료법이 없다. 몸이 점차 쇠약해지면서 환자는 일을 하거나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호주는 장애인을 위한 복지제도가 매우 체계적으로 잘 운영 되고 있다. 따라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이 복지제도를 통 해 지원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카스 한인 장애인서비스팀은 국가장애보험제도 (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 NDIS)를 통해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는 어느 고객의 이야기 를 들려주었다.

김 선생님은 30여년 전 호주에 이민 온 한국인으로, 불행히도 인생의 전성기였던 40대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2008년 당시 그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자주 넘어졌고 약물 부작용으로 우울증까지 겪게 되었다.

통제하기 힘든 분노와 계속되는 환청에 시달리는 가운데 그는 점점 내성적으로 변했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도 회피했다. 가 족들 역시 집안의 가장이 불치병을 앓게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늘 누군가의 보살핌이 있어야 하는 김 선생님을 혼자 둘 수 없는 상황에서 점점 지쳐만 갔다.

갑자기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될 경우 환자 본인은 물론이 고 가족들 역시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이런 어려 운 일을 당할 때 장애인들은 호주 정부의 NDIS프로그램을 신 청,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NDIS는 영구장애로 고통 받 는 65세 미만의 호주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에게 필요한 서비스 와 지원을 제공하는 제도이다.

김 선생님도 NDIS 프로그램 신청을 하게 되었고 카스에 한인 장애인 서비스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본인을 도와주고 서비스를 제공해줄 기관으로 카스를 선택했다.

카스 한인 장애인서비스팀은 “우리는 즉시 김 선생님을 위해 장애인 전용침대를 신청하고, 옆에서 운동을 도와줄 물리치료 사를 연결하는 등 하나씩 하나씩 일을 진행해나갔다. 또 카스 나 한인커뮤니티가 주최하는 모임이나 행사 등 다양한 활동에 김 선생님이 참여하도록 권장하고 도와줌으로써 다른 사람들 을 만나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김 선생님의 부인은 카스 팀에 감사편지를 보내왔다. 김 선생님의 부인은 편지에서 “남편은 이제 본인의 병에 대해 조금 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또한 병세가 천천히 진행되 도록 운동을 통해 꾸준히 노력하는 가운데 처음과 달리 카스의 그룹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맛있는 음식을 함 께 만들며 다른 참가자들과 교류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더 구나 카스가 제공하는 정기적인 지원서비스와 관리로 우리 가 족은 외출이나 휴식시간을 조금 더 가질 수 있게 되어 생활에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카스 장애인서비스팀은 “김 선생님과 그의 가족들 같은 분들 의 어려움과 부담을 덜어줄 수 있도록 우리가 도움과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덧붙였다.

비록 난치병 혹은 병이 악화되는 상황일지라도 전문 장애인 서 비스기관은 고객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서비스기 관의 지원을 통해 적어도 상황이 더욱 나빠지는 것은 예방할 수 있다.

카스 장애인 서비스팀 직원들은 전문적인 지식과 적 극적인 태도로 고객과 그 가족이 어두운 시기를 잘 극복하도 록 희망의 빛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3] 시니어들에게 코로나 시대는줌(Zoom)으로 세상과 소통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3] 시니어들에게 코로나 시대는줌(Zoom)으로 세상과 소통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3]

시니어들에게 코로나 시대는줌(Zoom)으로 세상과 소통

암을 비롯한 갖가지 질병이나 사고 등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 놓는다. 이민자들의 경우 호주의 복지 시스템에 익숙지 않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 언어 문제까 지 겹쳐 더 어려움을 겪는다.

본 칼럼은 뜻하지 않게 만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전문 복지기관의 도움으로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 그리고 사랑으로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호주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실제적 인 도움을 제공함과 동시에 더 나아가 호주 사회로의 융합을 위한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되고자 하는 뜻에서 마련되었다.

특별히 이번 주에는 한인 어르신들을 위해 그동안 카스에서 진행해 왔던 줌(Zoom) 무료 세션에 참가, 줌을 통한 여러가지 활동을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극복해나가고 있는 어느 참가자의 글을 게재한다.

 

 


우리 세대는 오랜 세월 많은 일을 겪 으며 살아왔다.

나 어릴 때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

그 말씀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2020년 초 부터 온 지구를 혼란과 아픔으로 몰고 온 코로나-19. 개인적으로 나는 2차 대전과 한국 전쟁을 겪은 세 대이고 오래 전부터 천재 지변과 인재로 인해 인류가 고통 받은 것을 지켜봐 왔지만 이런 세상은 정말 처음 겪는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묶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 는 가족과 친지들을 그리 어렵지않게 만날 수 있었다.

비행기만 타면 그리 운 사람도 만나고 아름다운 곳을 방문 할 수도 있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이 었던가!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우리는 모두 한 동 안 불안하고 당혹감에 휩싸였고 무엇 보다 만남과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니 너무나 답답했다.

하늘 길과 땅 길이 막혀 먼 곳을 방 문할 수도 없는데다가 격리되어 이웃 도 만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으니 참 으로 기가 막히다. 산책을 나가도 개들 은 사람을 바라보고 다가오는데 우리 는 서로 외면을 하고 등을 돌리는 이상 한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천만 다행인

것은 세상이 발전해서 전화와 카톡, 거 기다 줌으로 멀리 있는 사람들과 화상 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나 다 행인지 모른다. 내가 이 전에 경험하지 못한 혼돈의 시대를 이렇게나마 살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나는 코로나로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중 우연히 교민 신문에서 카스의 ‘시니 어를 위한 줌 무료 강좌’에 관한 기사를 읽고 웨스트 라이드 카스 사무실에 찾 아가 줌 강좌 등록을 했다.

다문화 사회복지 기관인 카스는 팬데 믹으로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우리 같 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줌 교육 프로그 램을 마련했다.

내가 잘 배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수업 시간 강사와 자원 봉사자들이 친철하게 천천히 잘 가 르쳐주어 강좌를 이수할 수 있었다. 이 후 만나기 어려운 가족, 지인들과 영상 으로 만날 수 있어 얼마나 숨통이 트였 는지!

또한 한국에 있는 딸 가족, 멜번에 있 는 두 아들 가족과 줌으로 안부도 묻고 대화도 하고 이렇게 사람과의 만남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에 참으로 놀랍고 감사하고 있다.

80이 넘은 내가 젊은 사 람이나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줌 을 배워 영상으로 다른 사람들과 만나 고 외부와 소통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뿌 듯하다.

그리고 줌을 통해 직접 가지 않 아도 문화교실에서 하는 인문학 클래식 음악 시간의 설명도 대면 수업과 똑 같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 중의 하나다.

가끔은 회원들끼리 작은 음악 회 형식으로 각자의 재능을 자랑하는 즐거운 시간도 갖는다. 하모니카 연주 를 하는 이도 있고 함께 좋아하는 노래 를 부르기도 하는데 나는 오카리나로 연주 실력을 뽐낼 수 있었다.

작년부터 코비드-19 로 인해 고립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고령의 노인들 중에는 이민 온지 30년이 넘었어도 이 사회에 적응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언어 소통의 문제, 낯선 법과 문화 또 이 사회에서 나고 자란 자녀들과의 대 화 단절, 이동의 어려움, 센터링크나 카 운슬과 같은 정부 기관의 복잡한 절차 등 노인들이 겪는 문제는 정말 한 두가 지가 아니다.

그런만큼 답답함으로 인한 우울증도 늘어나 고통 또한 심하다. 줌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고립 되고 외로웠을 것이지만 그런대로 이 어려운 세상을 잘 건뎌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울감도 떨쳐 버릴 수 있어 감 사하며 이 기회가 오히려 나중에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줌은 팩데믹이라는 이 혼란의 시대, 더 나아가 록다운 장기화로 예상치 못 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소통의 아이콘’ 으로 떠올라 많은 사람들, 특히 어르신 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주고 있다.

어려운 시기 한 가운데 있을 때는 고 통의 끝은 과연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한다. 하지만 인생 을 돌아보면 어려운 시간들은 어느 덧 바람처럼, 구름처럼, 저만치 흘러가고 있는 것을 기억한다. 보고 싶은 사람들 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아름다운 세월이 곧 우리 모두에게 찾 아올 것이다. 용기와 희망을 가져본다.

기사제공= 카스

[카스 (CASS) 사회복지 칼럼 2] 인생에 새로운 장 열어 준 은인 ‘단기 회복 치료 프로그램’ 참여 고객 이야기

[카스 (CASS) 사회복지 칼럼 2] 인생에 새로운 장 열어 준 은인 ‘단기 회복 치료 프로그램’ 참여 고객 이야기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2]

카스 노인 복지 서비스 고객- 인생에 새로운 장 열어 준 은인 '단기 회복 치료 프로그램’ 참여 고객 이야기가 2021년 7월 30일일자 한인신문사의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2 ] 에 소개 되었습니다.

격주로 소개되는 [카스(CASS) 사회복지 칼럼] 을 한호일보, 코리아 타운, 코리안 뉴스를 통해서 만나보세요


암을 비롯한 갖가지 질병이나 여러 사고 등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 놓는다. 이민자들의 경우 호주의 복지 시스템에 익숙지 않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 언어 문제까지 겹쳐 더 어려움을 겪는다.

인생은 늘 우리의 계획대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어쩌면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는 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에게는 기쁨과 웃음의 시간이 있는가 하면 슬픔과 고통의 시간도 있다. 특히 고통의 시간에 직면했을 때, 어떤 이들은 이것을 피해 도망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자신감을 잃지않고 묵묵히 앞에 놓인 삶을 지속하기도 한다.

2019년 초 카스는 정부로부터 ‘단기회복 치료 프로그램(Short-Term Restorative Care program, 이하 STRC프로그램)’ 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승인받았다. 단기 회복 치료 프로그램이란 병원 입원 환자가 퇴원 후 회복을 위해 8주 동안 집에서 집중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정부 심사 프로그램으로 샤워, 청소, 교통, 쇼핑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굴곡진 삶의 고난 속에서도 STRC 프로그램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용기를 잃지 않고 삶의 기쁨을 회복하게 된 한 고객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한국에서 평범한 직장 여성으로 살아가던 이 여사는 80년대에 남편과 함께 어린 딸을 데리고 호주에 이민을 왔다.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떠나 이국 땅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호주에서의 행복한 삶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기대했던 새로운 나라에서의 안정된 삶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민온 지 얼마 되지않은 어느 날,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남편의 지병으로 평화롭던 가정은 하루 아침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남편은 스물 네시간 거의 모든 것을 이 여사와 딸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이나 이 여사는 그런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무엇보다 갑자기 닥친 불행 앞에서 이 여사는 원망과 후회보다는 당면한 현실을 받아들였다. 정원에서 채소를 키우는 일에 재미를 붙이거나 일요일마다 교회 예배에 참석하며 열심히 사람들과 교제하는 등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해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가드닝은 그녀에게 큰 즐거움이었으며 위로가 되었다. 이 여사의 유난히 깔끔한 성격으로 정원은 잡초 하나 없이 늘 잘 관리되었다.

그러던 2018년,이 여사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정원 일을 하던 중 뒷 마당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왼쪽 엉덩이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것이다. 한 달 동안의 입원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몸의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이 여사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거의 없게 된 것이다. 이전의 그녀 성격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저 베란다에 앉아 정원에서 시들어가는 꽃과 채소들,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커 나가는 잡초를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자신의 처지가 믿을 수 없었기에 낙심한 그녀는 점점 외부와의 교류를 끊었고 집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게 되었다. 점차 자신의 삶이 가치가 없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 여사의 처지가 주변에 알려지면서 지인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도움과 지원이 이뤄졌고 운이 좋게도 2019년 초 카스가 정부로부터 단기회복 치료 프로그램 제공 기관으로 마침 승인받은 시점에 카스 직원들을 통해 이 여사에게 STRC 프로그램을 추천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그녀는 정부로부터 단기회복 치료와 홈 에이징 서비스(Home Ageing service) 승인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STRC와 홈 에이징 프로그램을 통해 제공되는 물리 치료와 청소 등 일상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받으면서 이 여사의 건강 상태는 놀랍도록 호전되었다. 특히 재활 프로그램에서 제공한 미술 치료를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된 것은 실의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매우 큰 힘과 용기, 위로가 되었다.

8 주간의 STRC서비스를 다 받은 후 이 여사는 한인 그룹 활동에도 참여하면서 사람들과의 교류를 늘리고 건강도 회복될 수 있었다. 카스 직원들 역시 변화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

이제 이 여사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300미터 정도를 걸을 수 있다. 또 구부러진 등도 조금씩 서서히 호전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려는 동기와 자신감을 되찾으면서 그동안 참여하지 못했던 교회 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등 사회 활동에도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

단기 회복 치료는 이 여사의 삶에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 준 정말 고마운 은인이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방문이 어렵게 되자 이 여사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근황을 전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자신의 육체적 한계가 갖는 구속에 갇히기보다는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운데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길고 외롭고 어두운 터널의 끝에는 항상 빛이 있다. 한인 커뮤니티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2년 동안 카스는 한국 커뮤니티의 수요에 맞는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오고 있다. 우리는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시련을 피할 수는 없어도 사회가 제공하는 유익한 프로그램과 서로 간의 도움을 통해 이 도전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다.

- 문의 및 상담: 9718 835(노인복지 전용 한국어 라인)

 

패밀리데이케어 센터,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제 2커리어로 관심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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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밀리데이케어 센터,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2커리어로 관심 높아져

                          책임감중요.. “ 자녀 케어와 일과의 균형 가장 장점

                                       버큼힐 센터 조슬린 선생님 스토리

최근 어린 자녀를 젊은 엄마들이나 2 커리어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아 교육 커리어를 쌓을 있는 패밀리 데이 케어 (Family Day Care: 이하FDC) 센터 운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엄마와 떨어져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자녀들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면에서 규모가 유치원보다 가정 환경과 비슷한 패밀리 데이 케어 센터가 높은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카스 차일드 케어 센터도 패밀리 데이 케어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버큼힐에서 FDC 운영하고 있는 조슬린 선생님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97 대학 재학 호주로 유학을 오면서 호주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언어 장벽 여러 어려움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결혼 후에는 차일드 케어 관련 학위를 취득해 한국에서 영어 유치원을 운영하겠다는 목표로 2001 다시 호주를 찾았다.함께 다양한 현지 유치원을 견학·실습하며 많은 것을 배웠고, 특히 맥쿼리 대학교 공부와Mia Mia’ 유치원의 커리큘럼과 환경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아이는 이런 곳에서 키우고 싶다 생각이 들었는데 이후 운좋게도 아이가 ‘Mia Mia’ 다니게 되어 곳에서 소중한 경험을 쌓을 있었다.

이후 North Sydney MLC 빌딩, St Leonards SBS 방송국, Chatswood 여러 차일드 케어 센터와 카운슬 운영 프로그램에서 일하며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이런 경험이 훗날 호주 정착을 결심하게 계기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영어 유치원을 차리려던 계획은 호주 정착으로 바뀌었고 유아 교육 공부가 끝나자마자 법무사와의 상담을 거쳐 회계학으로 다시 대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기술 이민을 하려면 유아 교육 학위로는 점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으로 영주권을 취득했고 학교 졸업 좋게도 호주 회사에 주니어 회계사로 취업할 있었다. 그렇게 6년간 회사에서 일하면서 이민 법무사 자격증도 따고 경력을 쌓는 데에 집중했지만 우리 부부 직장을 다니는 현실 속에서 돕는 가족없이 육아를 감당하는 일은 너무 벅찼다. 아이가 아파도 회사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제일 힘들어 아쉽지만 직장을 그만두었다.

학위 취득 지인의 도움으로 패밀리 데이 케어 센터를 시작했고, 올해로 운영 6년째를 맞았다. FDC 운영의 가장 장점은 아이를 직접 돌봄으로써 일과 가정을 균형 있게 유지할 있다는 점이다. 엄마가 집에 있다는 안정감, 출퇴근에 낭비되는 시간과 체력의 절약, 홈메이드 식단으로 아이들과 원아 모두가 건강하게 지낼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부모님들 사이에서는버큼힐 맛집이라 불릴 만큼 음식에 대한 호평도 많다.

현재 큰아이는 9학년, 작은아이는 6학년으로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직장 생활을 계속했다면 지금처럼 아이들에게 충분히 시간과 경제적 지원을 해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치원 운영 시간에는 외출이 어렵지만 아이들 사교육을 저녁이나 주말에 맞추는 것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어 그리 크게 불편하지 않다. 물론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쇼핑도 하고 싶은 마음이야 없겠는가. 하지만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대한 보람과 만족감이 커서 열심히 일할 있었고 6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지치지 않고 버틸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은 미리 준비된 계획에 따라 진행하고 있고 날의 날씨나 원생들 높이와 개개인에 촛점을 맞춘 세심한 케어를 하고 있다. 또한400여종이 넘는 다양한 보드게임을 통해 아이들은 교구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있는 재미와 지적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FDC 운영하는 것은 사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민자로서 특히 다른 가족의 자녀를 돌보는 일은 무엇보다 책임감이 요구된다. 지나오면서 힘든 상황도 많았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챙기기보다는 일하는 부모들을 생각해서 닫지 않고 지속적으로 운영을 해야 했던 점이 가장 어려웠던 같다. 특히 시기에는 수입도 현저히 줄었는데 마스크와 세정제 구입으로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출국하게 되면 원하는 일정에 돌아올 있다는 확신을 가질 없는 상황이어서 우리 가족 모두 한국에 가지 못했다. 더구나 장례식 날에도 아이들을 평소처럼 돌보며 아버지와의 이별을 편히 슬퍼할 없었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아픔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길을 기쁘게 있는 보람 있는 일은 참으로 많다. 무엇보다 졸업생 친구들이 찾아올 때의 기쁨은 남다르다. 어린 아이로 처음 왔었는데 어느 말도 배우고, 기저귀를 떼고, 학교를 가고 성장 과정을 학부모들과 함께 공유할 있는 , 그리고 학부모와 선생님으로서  친구가 되어 좋은 인연으로 이어가고 있는 점들.. 모두가 감사하다.

FDC 운영할 패밀리 스킴(Family Scheme)’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 한국 운영자들 사이에서는 서비스 제공업체(Service Provider) 스킴이라고 부른다. ,  스킴은 호주 정부로부터 인증받은 곳으로 패밀리 데이 케어 등록 서포트 관리 감독하는 업무를 진행한다.

카스 패밀리 데이 케어는 내게 생소했지만 평판이 좋았다. 카스는 스킴 규모가 크다 보니 코디네이터 선생님 이외에도 분야 전문적인 직원들이 있어서 세분화되고 상황에 맞는 지원,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받을 있는 업무 효율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시간에 쫒겨서 서류 처리하는 업무가 미뤄지는 상황도 생긴다. 하지만 카스 한인 직원들은 방문 때마다 일정에 맞추어 효율적으로 마무리할 있도록 꼼꼼히 필요한 부분을 챙겨주어 도움이 된다. 카스는 차일드 케어 포함, 노인/ 장애인/ 정착 서비스를 통해 다문화 커뮤니티에 기여하고 있고 무엇보다 비영리 기관이므로 운영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양로원 설립 기타 커뮤니티 발전을 위해 사용된다.

사진 1: 버큼힐 패밀리 데이 케어 센터  ‘7월의 크리스마스 파티모습.

사진 2: 해당 센터에는 400여종이 넘는 다양한 보드게임 포함, 성장기에 맞는 재미있고 유익한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사진 3& 4: 패밀리 데이 케어 센터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모습.

 

 

 

카스 성장의 산 증인.. 창립자 헨리

카스 성장의 산 증인.. 창립자 헨리

                         카스 성장의 증인..  창립자 헨리

           불의 사고로 인한 실명에도 지역사회에 대한 열정 멈추지 않아

호주 한인 사회에서카스(CASS)’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아마도신뢰 것이다. 44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역사회의 약자를 위한 복지 서비스를 꾸준히 확장해 기관. 그러나 오늘날의 카스를 이야기할 결코 빼놓을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카스의 창립자, 헨리 (Henry Pan OAM)이다. 그의 삶은헌신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현실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2006, 헨리는 예기치 못한 끔찍한 사고로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누구에게나 삶이 멈춰버릴 법한 시련이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보다 긍정을 선택했다.

그의 이러한 삶의 태도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이타적인 가치관에도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젊은 시절 스스로에게 했던호주 사회가 나에게 것을 지역사회에 되돌려주겠다 약속은 그의 삶을 지탱해 버팀목이었다. 오히려 실명 이후 헨리는 강해졌다. 최신 IT 기술을 적극 활용해 이메일과 전화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하며, 지금도 무보수 자원봉사자로서 카스 운영 전반을 세심히 챙기고 있다.

카스는 1981, 명의 아이들을 돌보던 작은 차일드케어 센터에서 출발했다. 이후 노인·장애인 복지 서비스, 차일드케어, 양로원, 정착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종합 사회복지기관으로 성장했다.

호주에는 수많은 복지 기관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카스는 정부 보조금에만 의존하는 전통적 복지 기관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윤 창출이 아닌사회 공헌공익 실현’, ‘일자리 창출이라는 분명한 가치를 중심에 두고 운영되어 왔다. 이러한 카스의 역사와 오늘의 성장은 헨리 창립자의 신념과 철학을 빼고는 설명할 없다.

현재 카스는 매주 8,500가구가 넘는 가정에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800 이상의 직원과 450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 가운데 250 이상이 한국계라는 점은, 카스가 호주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를 보여준다.

특히 백세 시대로 접어들며 노인 복지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카스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한인 커뮤니티 내에서도 복지 기관이 늘어나고 경쟁이 치열해졌지만, 카스가 여전히 가장 신뢰받는 기관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기관이기 때문이 아니다. 카스만의 진정성, 문화적 포용성,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된 전문성이 있기 때문이다.

2024, 헨리는 TOP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 민스 NSW 주총리가 카스 자선 디너 행사에서 보낸 영상 메시지를 소개했다. 민스 주총리는카스는 40 동안 다문화 커뮤니티에 헌신해 왔으며, 공헌은 지역사회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전했다. 메시지는 카스의 정체성과 가치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한 말이기도 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카스가 흔들림 없이 성장해 있었던 배경에는 헨리의 신념이 조직 전체에 깊이 뿌리내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헨리는 언론 인터뷰나 각종 수상 소감에서 같은 메시지를 강조한다.

카스는 특정 민족이나 집단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다문화 커뮤니티 전체를 위한 비영리 기관이다. 점에 대한 오해가 종종 있어 안타까운데, 이번 기회를 통해 한인 사회에서도 카스를 보다 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한다.”

또한 그는이제는 백세 시대를 살아가는 만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젊고 적극적인 삶을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의 삶의 지혜와 경험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있도록, 커뮤니티 안에서 많은 역할을 해주시기를 기대한다. 카스는 여러분의 삶을 더욱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함께할 이라고 강조한다.

헨리 주요 수상 경력

2024 3섹터 어워드(Third Sector Awards) ‘올해의 CEO

2022 ZEST Award Hall of Fame

2021 Compassion Award

    세계 중화권 리더 가운데 자선·공공복지 기여도가 높은 8명에게만 수여

2018 UNSW 동문상

    – 35 명의 동문 뛰어난 업적을 이룬 소수에게 수여, 당시 11 유일한 아시아계

1997 호주 훈장(OAM)

2001 호주 100주년 메달(Centenary Medal)

사진 1 2: 2022 ZEST Award 수상 당시 헨리의 모습과 상패.

사진 3: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철저한 헨리.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소탈한 면도 갖고 있다.

 

 

 

병약한 나, 암으로 세상 떠난 남편의 빈 자리

병약한 나, 암으로 세상 떠난 남편의 빈 자리

     병약한 , 암으로 세상 떠난 남편의 자리

마이 에이지드 케어 신청 통한 정부와 카스 도움으로 회복

                      송영한 어르신 이야기

올해 70 중반인 나는, 은퇴 새로운 삶을 호주에서 시작하기로 결심한 남편을 따라 1997 호주로 이민 오게 되었다. 장성한 아들은 이미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있었기에 한국에 남기로 했다. 낯선 타국에서의 새로운 환경 적응 언어 문제로 인한 두려움이 컸지만 자상하게 나를 보살펴 주는 남편을 믿고 의지했기에 두려움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호주 입국 새로운 곳에서의 정착이 모든 면에서 수월할 수는 없겠으나 우리 부부는 비교적 순조롭게 호주에 삶의 닻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호주에 들어온 지나지 않은 어느 , 남편은 갑작스럽게 폐암 진단을 받았다. 선고라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편은 오히려 자신보다 홀로 남을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여러모로 이제 호주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느꼈던 남편은 투병 중에도 내가 앞으로 혼자서도 살아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유언처럼 남겼다.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과 주위 지인들에게아내를 부탁한다 말을 남긴 , 2008 곁을 떠났다. 발생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너무나 황망했다. 세심한 부분까지 보살피던 남편의 부재로 나는 마치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과 같은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지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비교적 새로운 상황을 이겨나갈 있었던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이국 땅에서 가족도 없이 혼자 지내다 보니 남편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졌고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우울한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나는 나이가 들수록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났다. 디스크(척추 협착증), 좌골신경통, 관절염, 무릎 퇴행성 질환, 통증까지이제는 아픈 곳이 없을 정도였다.

몸이 이렇게 아파도 깔끔한 성격 탓에 집은 깨끗해야 했다. 가끔 청소기를 돌리기라도 하면 허리가 심하게 아파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생전에 남편은한국과 달리 카펫이 깔린 집은 청소가 힘들다 청소를 도맡아 했는데, 남편이 떠난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하니 너무 벅차 여러 눈물을 흘리곤 했다.

남편이 떠난 3 되던 2015 3월경, 친구의 소개로 카스 모임에 참석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수시로 찾아오는 허리 통증으로 같은 자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웠고 갑자기 소리도 내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남들에게 이런 아픔을 보이는 것도 내키지 않아 모임 중간에 나오게 되었는데 카스의 그룹 지도 선생님이 뒤따라 나와 집까지 태워다 주었고 안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분은 남편 타계 이후에 처한 나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은 카스 코디네이터는 내가 아파도 돌봐줄 가족이 없는 상황임을 알고 정부에서 도움을 받을 있는 기관이 있다며 My Aged Care 소개해 주었다. 이후 마이 에이지드 케어 신청을 도와주고, 어떤 서비스가 있는지 그리고 진행 과정 등에 대해 차근 차근 설명하는 서비스 심사 필요한 모든 과정을 함께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평생을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한 작은 조차도 혼자서 해결하기를 어려워 했던 내게 용기를 주며  하나씩 스스로 있도록 격려를 해주니 막막했던 삶에 얼마나 용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본인의 일처럼 나서서 애써 카스 코디네이터 덕분에 2021 18 동안 단기집중치료 서비스(STRC) 받았고 STRC 4개월 만에 홈케어 서비스(HAS) 승인을 받게 되었다. 프로그램을 통해 카스 직원들은 내게 필요한 서비스와 집안 안전을 위한 설비, 수리가 필요한 부분 등을 꼼꼼하게 체크해 주었다. 물리 치료 마사지를 받아 건강 회복에 집중할 있도록 배려하는 가운데 일상 생활에서의 케어를 담당할 서포트 워커도 보내주었다.

단기 집중치료 8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재활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아픈 곳이 서서히 회복되었다. 또한 친절하고 배려심 깊은 서포트 워커는 집안 청소와 쇼핑은 물론 방문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혼자 있는 내게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다. 8 동안 한사람을 위해 의료 전문인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움직여주니 감사했다.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회복이 이뤄지는 시간이었다. 이제 이상  쓸쓸하고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기 집중 치료가 끝난 후에는 홈케어 패키지 서비스(HCP) 연결되어 카스의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받을 있었다. 카스가 진행하는 소셜 서포트 그룹에도 참석, 매주 다양하게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통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정성스럽게 준비된 점심으로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기회도 생겼다. 코비드-19 인해 외부에 나갈 없는 시기에는 (Zoom) 통한 그룹 활동에 참석했고, 격주로 보내주는 서포트 프로그램을 하면서 사회적 유대 관계를 유지할 있었다.

주위엔 도움을 주는 분들이 정말 많다.

이제는 이상 혼자서 숨어 울지 않는다. 나를 위해 항상 애쓰는 코디 선생님들과 서포트 워커분들.. 노인 복지를 위해 애쓰고 수고하는 카스의 모든 분들께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사진 1. 질병과 남편의 빈자리로 크게 외로움을 느꼈던 송영한 어르신. 이제 건강도 회복되어 훨씬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사진 2. 그룹에서의 크리스마스 파티 모습.